[책] 강신주의 감정수업 中 겸손

강신주의 감정수업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의 감정수업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선생은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팟캐스트로 처음 그의 글 외의 목소리와 감정을 포함해 접하게 되었다. 팟캐스트를 듣는 동안, 나는 그가 명석하고 지적이어서가 아니라, 가끔 흥분도 하고 화도 내는 것이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어 재미있었다. 나중에는 영화 ‘토리노의 말‘ 시네토크에 방청가서 직접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향신문: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2013-07-21) 등으로 왠지 너무 남을 가르치는 것 같고, 다 아는 듯한 오만함이 싫어서 관심이 좀 멀어졌다가, 최근 그가 감정에 대해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또 뭘 가르치실려나’ 시큰둥했다. 하지만 마침 내가 관심있는 주제라 목차 한번 살펴 본다는 것이, 그만 낚시 찌를 덥썩 물고 책을 사보게 되었다.

책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문학과 그림과 감정과 철학이 결합된 책이어서, 처음에는 ‘강신주 박사가 이 문학책과 그림들을 다 고른 것인지?’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이 책의 기획과 편집은, 강신주 박사가 에필로그에 밝혔듯이, 민음사의 양희정이라는 편집자가 했다고 한다. 강 박사는 그녀에 대해  “정말 이상한 캐릭터의 편집자였다. 당시 마흔에 가까운 노처녀였지만, 내게는 거의 문학소녀로 느껴졌다. 심지어 패션 감각마저도 유치하고 순진했다!”라고 첫 인상을 기록했다.

그녀는 강 박사에게 먼저 연락해서 이 소재를 제안하고, 책과 그림을 골라 보여줬다고 한다.  대부분 책 뒤에 가려지는 편집자까지 소개한 것은 강신주 박사가 진짜 고마워서 그런 것 같았고, 편집자가 그만큼 수고를 한 것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보상같았다. 덕분에 나도 ‘편집자들이 이런 일도 하는구나’ 사실도 알게 되고, ‘진짜 자기가 하는 일에 애정이 있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그 동안 미묘하게 구분되지 않은 감정들의 엉킴을 조금이라도 풀게 되어서 반가웠다. 밑줄긋기 많이 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현재의 내 처지와 맞닿아 있는) ‘겸손’에 대해 옮겨 본다.

나는 최근 몇년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맞는 것인가?’라는 회의 다음으로, ‘내가 사람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가?’ 회의에 빠져 있다. 

예전에는 ‘나는 힘이 쎄다’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자만하지 않게 조심하자’라는 무기력과 슬픔에 빠져 있다. 자만과 무기력 사이에 있는 진짜 ‘겸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26. 겸손 : 진정한 사랑을 위한 자기희생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스피노자의 말처럼 자신의 무능력과 약함을 인정할 때, 누구나 겸손해진다. 그렇다고 겸손에서 무엇인가 비극적인 느낌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겸손의 감정을 느껴 보았던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겸손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자신을 지배하던 해묵은 편견, 허영, 그리고 자만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색안경을 벗고 자신이나 세계, 그리고 타인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자신의 무능력과 약함을 직시할 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확히 알게 된다.

과거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따라서 겸손해진 사람은 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무능력과 약함을 느꼈을 뿐이다.

이것은 반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더 진지하고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성숙해진 것이다.

청년기 때를 돌아보라. 무엇이든지 다 얻을 수 있고,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유치한 자만심에 우리가 얼마나 찌들어 있었는지를. 그래서 겸손의 감정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성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나친 겸손은 우리에게 우리에게 청년기의 자만심보다 더 심한 해악을 줄 수도 있다. 지나친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마저도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렇지만 이런 절망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추가 한쪽에서 반대편 쪽으로 급격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자만심도 절망으로 바닥을 쳐야 한다. 오른쪽 왼쪽, 그리고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다가 추는 천천히 가운데서 멈춘다. 마찬가지로 자만심에서 절망으로 왔다 갔다 해야만 우리는 균형 잡힌 겸손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그럴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자신의 무능력과 약함도 알지만, 동시에 자신의 능력과 능력과 강함도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