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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 아카데미아갤러리

 

이 세상의 도시 중 빛이 가장 화사한 곳은? 나의 답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 선정한 '완벽한 여행자가 가봐야 할 곳 50선' 에서 10개 도시 명소 중 하나로 선정한 베네치아. 찬란한 태양과 바다, 운하로 늘 아름다운 빛과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도시다.

곤돌라를 타고 운하를 따라 흐르노라면 그 반짝이는 물비늘도 물비늘이지만 그것들이 건물 외벽에 끊임없는 일렁임으로 투사돼 퍼져나가는 모습, 희고 노란, 때로는 오렌지빛을 띤 건물의 예쁜 파장이 푸른 창공과 만나 이루는 조화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형용하기 어렵다.

서양미술 색채에 큰 영향

바로 이 도시의 화가들이 유럽 회화 사상 가장 풍성하고 찬란한 색상을 만들어낸 베네치아파 화가들이다.

그 대표적인 거장이 16세기 화가 티치아노. 이 대가 이후 4백년 동안 서양의 미술학도들 "형태는 미켈란젤로에게서, 색채는 티치아노에게서!" 라는 금언을 되뇌어야만 했다. 베네치아의 빛과 색채가 서양미술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어렵지않게 이해하게 하는 이야기다. "티치아노 같은 거장이 짐으로부터 시중을 받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늙은 티치아노가 그림을 그리다 붓을 떨어뜨렸을 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황급히 붓을 줏어주며 주위의 신하와 시종들에게 한 말이다. 이 말에서도 우리는 티치아노의 색채가 당대인들에게 준 충격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같이 풍부하고 화사한 색상을 창출하는데 있어 베네치아가 안료보다는 화포를 통해 그 소명을 더욱 잘 실천해왔다는 것이다. 유화의 화포를 우리는 캔버스라고 부르는데, 베네치아는 배의 돛을 만드는데 쓰이는 이 천을 화포로 사용한 최초의 도시다. 오늘날도 이 천은 가장 이상적인 유화의 화포로 인정받고 있다. 그전까지는 나무 패널을 즐겨 사용했는데, 표면이 딱딱하고 매끈한 관계로 아무래도 톤이 풍부하게 살지못했다.

베네치아인들이 캔버스천을 유화의 화포로 사용하게 된 것은 중세말 이래 이 도시가 동방과 서유럽을 잇는 지중해의 핵심적인 무역 요충지로서 활발한 해상활동을 펼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세기까지 유럽 최대의 조선소가 있었던 베네치아에는 늘 캔버스천이 넘쳐났고, 미국 서부 개척자들이 포장마차천으로 청바지를 만들어 입듯 자연스레 이 천을 화포로 삼게 됐다.

조선소를 전시장으로 활용

그만큼 일찍부터 남보다 울림이 큰 색채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종종 이렇게 사회적 환경이나 조건이 미술과 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현재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전 전시장으로 쓰이는 아르세날레도 당시의 조선소 건물을 재활용한 시설이다 ).

지금도 특산품인 유리공예품과 섬유제품으로 그 화려한 색상을 이어받고 있는 베네치아. 그 대표적인 미술관이 아카데미아 갤러리다. 이곳에는 특별히 복음서 저자 마가(마르코)에 관한 그림이 많다. 그것은 이 도시가 무엇보다 마가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중심인 산 마르코 대성당에는 마가의 유해가 안치돼 있는데 9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모셔온 것이라고 한다. 1071년 완공된 이 마가의 성당은 위대한 성인을 모신 만큼 더할 수 없이 예술적으로 치장돼 있다. 성당 앞 광장에는 비둘기떼가 그림같이 날아들고 밤이면 노천 카페에서 정상급의 현악 앙상블이 나그네의 우수를 자극한다. 이 예술의 향기를 듬뿍 모아 마가는 세계적인 문화이벤트 베니스 비엔날레와 베니스 영화제를 개최하고 수상자들을 치하해왔다.

세속에 찌든 영혼 해방구

이 양대 행사에서 수여하는 유명한 황금사자상이 바로 마가의 이미지를 딴 것이다. 서양미술사에서는 전통적으로 마가를 사자로 표현했다. 이는 마가복음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 요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대표적인 짐승이 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동물로 자리잡았다.

티치아노의 후배 틴토레토가 그린 '노예를 해방시키는 마가' (1548년)에서 우리는 이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 하늘로부터 날아와 불쌍한 노예를 구원하는 극적인 장면을 볼 수 있다. 바닥에 노예가 벌거벗기운 채 누워있고 주변에 매와 도끼 등이 부서져 있다. 놀란 사람들이 그를 응시하거나 그로부터 몸을 피하고 있다. 빛을 발하며 하늘에서 강림하는 이가 마가다. 기독교도인 노예는 그의 주인으로부터 벌을 받아 거리를 끌려다니다가 광장에서 처형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마가가 그의 포박을 끊어버리고 형구를 깨뜨림으로써 자유의 기적을 그에게 선사해 주었다. 해방의 사자 마가는 오늘도 베네치아의 아름다움과 예술로 세속에 찌든 영혼들을 이렇게 해방시키고 있다. 미를 통한 구원을 그리워하는 이라면 그래서 베네치아를 꼭 순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