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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원 - 베이징(중국)

자금성의 태화전
베이징 고궁박물원(北京故宮搏物院)이 세계의 다른 박물관과 크게 다른 점은 바로 고궁박물원이 단순하게 연대순으로 유물만 전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명대와 청대를 걸쳐 500여년간 사용 된 황궁 전체를 하나의 유물로 관람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건축을 비롯하여 복합적인 성격의 중국화를 잠시나마 4차원적으로써 체험하게 한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박물관에 해당하는 부분은 회화관과 진보관의 두 건물로 고궁의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

북경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 고궁은 자금성, 즉 들어갈 수 없도록 자색벽으로 둘러싸인 성이라고도 불리는 것과 같이 약 lOm 높이의 붉은 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또, 그 벽의 주위에는 중세 유럽의 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깊고 넓은 물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체 면적이 약82만㎡ 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다. 중국의 상징인 천안문의 정북에 위치하며 출입문을 비롯한 중요한 건물들은 천안문과 같은 남북 축 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그 밖의 대소 건물(약69여 동)들도 대략 그 축을 중심으로 대칭형으로 배치되어 평면도에서부터 권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대개의 경우 고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남문인 오문으로 들어가 외정, 즉 황제의 의식용 공간을 둘러본 후 북쪽으로 진행하며 내정, 즉 황실의 생활 공간을 보게 된다. 서양 여러 나라에서 이미 널리 행하고 있는 것과 같이 여러 나라 말로 된 카세트 테이프가 준비되어 있어 자기가 가장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의 테이프를 선택하여 중요한 부분의 설명을 들어가며 관람하여 북문인 신무문으로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3시간 정도이다. 그러나, 그 테이프의 설명에는 회화관이나 진보관의 관람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자금성 조감도오문과 같은 남북의 축상에 놓여 있는 태화문, 태화전, 중화전 등의 건물들은 고궁의 외벽이나 평면도에서 얻은 강한 위압감을 재확인시켜 주기에 아주 적절한 건물들이다. 황유리와로 덮인 지붕의 선은 경직된 일직선을 유지하며, 벽은 권위와 행운의 상징인 붉은 색으로 도색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태화전은 조각으로 뒤덮인 난간이 있는 삼단의 대리석 축대 위에 올라선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다. 열두개의 기둥이 늘어선 정면의 폭이 60m이며 높이는 약 35m로, 정면의 폭이 30m인 우리나라의 경복궁 근정전과 비교하면 전체 부피로 보아 약 6배 정도이다. 그 규모와 형태, 그리 고 색채에서 인간과는 전혀 무관한 다른 세계에 속하는 건물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여 이미 인간이 아닌 중국 황제들의 권위를 적절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그러나 근정전 지붕의 나는 듯한 곡선, 유약을 바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기와, 그리고 부드러운 전체의 색조와 아담한 규모에서 오는 더없이 편안한 인간과의 조화와 아름다움과는 큰 대조를 보인다.

고궁평면도황궁의 내부 장식은 일관성 있게 '이 이상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하는 느낌을 주는 일종의 포화 상태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우리는 만주족이었던 청나라 황실의 취향을 단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필자가 다른 곳 에서 볼 수 있었던 명대 선비들의 우아하고 여유 있는 생활 공간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으며 모든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는 막다른 골목의 답답함을 느끼게한다.

필자에게는 수없이 많은 전각 가운데 청대 황실의 서화 수장품들이 보관되었던 건청궁과 양심전이 특히 반갑게 성격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후자는 다른 건물에 비하여 비교적 아담한 규모와 차분한 분위기에 서재다운 느낌을 주어 다른 건물들의 지나치게 화려한 인상을 어느 정도 씻어 주었다.

필자는 고궁박물원의 양신 부원장의 안내로 진보관과 회화관을 오전에 관람하고, 오후에는 오전에 미리 작성해서 제출해둔 희망 관람 미진열 회화 목록을 토대로 몇 점의 원·명대 회화를 볼 수 있었다. 위의 두 진열실은 현대적 설비를 갖추지 못한 방들로 진열 유물도 고궁의 다른 규모에 비하여 비교적 소규모였다. 양신 부원장에 의하면 문화혁명(1966∼1976년) 기간에 압수했던 많은 서화 작품들을 그 후 다시 원래 수장가들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진열 회화를 보게 되어 있는 장소는 수방제라는 건물로 본래는 황실 가족들이 가극을 관람하기 위하여 무대 장치를 갖추어 놓은 곳이며 지금은 내빈 응접실로 사용하는 아담한 공간이다. 여기에 푹신한 모포와 횐 상보를 덮은 큰 탁자를 설치하고 두 사람의 직원이 흰장갑을 끼고 그림을 다루며 보게 한다. 서화를 귀하게 제대로 다루는 귀족적 전통이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그대로 보전되어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신기하게 생각되었으며 중국 회화사를 강의하는 교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미수교 국가에서 온 필자에게 선선히 그림을 보여주는 데에서 대륙적인 아량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날 오후의 몇시간 들인 이 북경 방문기간 중 가장 뜻깊은 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 이성미 - 내가 본 세계의 건축 中 (한국건축산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