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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 보스턴(미국)

*웹갤러리 : http://www.gardnermuseum.org

가드너미술관 중정보스턴은 미국의 소위 '동부 기득권층(Eastern Establishment)'를 대표하는 도시로 그 주변 케임브리지에 있는 세계적 명문 하버드 대학, MIT 그리고 케네디 가문의 본거지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도시 자체는 인구가 약 60만 명 정도이므로 우리나라 수준으로는 비교적 아담한 편이다.

가장 큰 미술관은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이며 여기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약 30평 정도)이기는 하지만. 단독 한국 미술실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보스턴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한번쯤 이 미술관에 가 보았을 것이라. 그러나 그곳에서 과히 멀지 않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Isabella Stewart Gardener Museum)에 가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드너 미술관은 1903년에 개관한 미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이름이 긴 것은 그 걸립자의 이름을 따랐기 때문이며 그녀의 독특한 예술관, 생애의 발자취 그리고 꿈과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곳이 바로 이 가드너 미술관이다

가드너 여사는 1840년 보스턴의 한 부호이자 영국 Stuart(1603∼1714년)의 혈통을 이어받은 존 스튜어트(John Stewart)의 딸로 태어났다. 이런 관계로 이 미술관의 아름다운 중정에는 스코틀랜드의 국화인 엉겅퀴와 횐장미가 가득히 심어져 있다 그녀는 당시의 전통적인 가정교육 기간을 마치고 16세에 처음으로 파리에 가 그 곳에서 2년을 지냈다. 그 동안 주변의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게 되었고, 특히 이탈리아 미술과 건축 등에 큰 인상을 받아 후에 자신의 미술관 설계에 반영하였다. 1860년 부유한 집안의 가드너와 결혼해서 얼마 후 아이를 낳으나 불행히도 그 아이는 죽고 그녀는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아 우울증에 빠진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하여 세계 각국 - 유럽, 아프리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로 함께 여행을 다녔으며 그 결과로 오늘날 가드너 미술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중국복도짧은 글에 이 미술관 전체를 소개할 수 없으므로 사진으로 보이는 중정부터 살펴보겠다. 건축 설계는 시어즈(Willard T. Sears)라는 당시의 유명한 건축가가 맡았으나 가드너 여사의 의견이 상당히 크게 작용하였음을 그도 시인하였다. 우선 이 사진에서 건축 양식이 상당히 특이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유림의 여러 건축 양식들, 즉 로마,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그리고 르네상스 양식을 한꺼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4층으로 된 건물 중 3층까지가 진열실이고 4층은 여사가 거거하던 곳인데 현재는 미술관의 사무실로 사용한다. 이렇게 모든 방이 아치를 통해서, 그리고 반대편의 창문을 통해서 자연 채광을 받을 수 있거 되어 있는데 이것도 전적으로 가드너 여사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미술관은 창문이 없는 진열실들의 연속인데 이렇게 해서 중정을 중심으로 '숨쉬는 진열실' 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치들의 모양과 비교적 가느다란 기등, 그리고 주변의 분홍색이 감도는 대리석 벽의 조화는 여성적인 성서함이 넘치며, 가드너 여사가 가장 좋아하였던 베니스의 궁전 양식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이다. 주두 역시 여러 양식이 여기 저기 보이는데 겉으로 보면 레이스처럼 투조 된 비잔틴 양식, 인물이나 동물들을 부조로 장식해 놓은 로마네스 크 양식 등 다양하고 아름답다. 이 모든 건축의 부분들은 가드너 여사가 직접 이탈리아로부터 사온 것들과 부족한 부분은 옛 양식을 모방해서 만 든 것들로서 유럽의 어느 한 건물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개성 있는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동쪽과 서쪽의 난간(balustrade)은 베니스의 Ca d'Oro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

중정 바닥의 중심 부분에는 2세기경 로마시대의 모자이크(mosaic)가 깔려 있는데 그 중심에는 메두사(Medusa)의 얼굴이 차지하고 있다. 메두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카락이 뱀으로 이루어진 고르곤 (Gorgon)이라는 여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흥측하게 못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버린다는 신화의 내용을 상기시키려는 듯 모자이크를 향해 몇 개의 대리석 조각품들이 서 있도록 배치해 놓았다. 이처럼 유물 배치에 많은 신경을 써서 건축과 그 안에 담 겨 있는 미술품들 간의 상호 관계를 도모하였다. 중정 위는 거대한 유리 지붕으로 되어 있어 온실처럼 사계절 꽃이 가득 피어 있다. 최근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수했다고 한다.

미술관의 약 2,500여 점의 소장품들은 각각 특징 있는 방에 개관 당시 배치된 그대로 있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전후로 한 시대의 미술이 주류를 이루지만 동·서양, 그리고 이집트 미술까지도 포함되어 있어 매우 다양하다. 2층의 초기 르네상스시대 방에는 이탈리아 외에는 오직 이 곳에만 있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약 1416∼1492년)의 프레스코(fresco)가 있다. 정면 직립상의 <헤라클레스> 의 당당한 모습이 건물의 굵은 기등을 연상시키는 듯한 피에로 특유의 인 물화 양식으로 그려진 것이다.

라파엘의 방역시 2층 라파엘(Raphael, 1483∼1520년)의 두 점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미국인이 최초로 구입한 라파엘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토마소 잉가라니 백작(Count Tommaso Ingl의 초상화)로 라파엘의 짧은 생애 중 중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백작의 옷 색과 잘 어울리는 크림손(crimson) 벽지로 장식된 벽에 걸려 있다. 이 방도 그렇지만 다른 방들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미술품들의 색조와 잘 어 울리는 비단 벽지를 사용하였다. 필자가 1996년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벽 지를 새로 바꾸고 있는 방을 하나 보여주었는데 색채와 문양의 벽지를 구하지 못하면 공장에 특별 주문 제작시킨다고 하였다.

라파엘 못지 않게 유명하며 우리에게는 (비너스의 탄생)으로 잘 알려 진 신비감이 넘치는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년)의 작 품도 두점 있고 그 밖에 다른 방에도 렘브란트, 티치아노, 베르미어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수없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중국 미술품으로는 동위시대 543년의 연기가 있는 <석가오존비상> 과 송대의 <관음보살> 좌상이 있다. 모두 1층의 중국 복도(Chinese Loggia loggia는 양쪽에 벽이 없는 바람 쐬는 복도를 말함)에 있다.

미술품을 단지 고대 유물로 보지 않는다는 가드너 여사의 정신은 이 미술관이 그 동안 꾸준히 진행해 온 재관미술가(artist in residence)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 작가로 하여금 미술관에 6개월, 혹은 그 이상 주재하며 자신의 구상을 작품화하여 전시하도록 재정적 도움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가드너 여사는 당시의 젊은 작가 사전트(John Singer margent, 1856∼1925년)의 후원자였으며 이 화가는 여사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그 유명한 <엘 할레오(El Jaleo)> 라는 대작을 이 미술관에 남겼다.

마지막으로 가드너 여사의 종합적 예술관의 발현이라고 랄 수 있는 것은 이 미술관에서 열리는 음악회의 전통이다. 아름다운 예술품에 둘러싸인 방에서 열리는 소규모 음악회처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건축, 조각, 회화, 음악, 그리고 향기로운 꽃의 조화가 이루어 내는 보석과도 같은 미술관이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휴관일이어서 식당이 닫혀 있었는데 점심을 우아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아담한 식당이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미술관도 앞으로 설계할 때 이와 같은 시설들을 갖추면 어떨까.

이성미 - 내가 본 세계의 건축中 (한국건설산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