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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미술관 -오슬로(노르웨이)

*웹갤러리 : http://www.museumsnett.no/munchmuseet/

에드바르드 뭉크는 노르웨이가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로 사랑, 고통, 불안, 죽음 등을 주제로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표현한 독창적인 예술작을 통해 미술사의 흐름에 하나의 전환점을 제시했다. 19세기 인상파나 자연주의가 빛, 기쁨 등의 밝음에 초점을 뒀다면 그의 예술은 내면세계의 어둠에 주목했다. 극적인 주제, 단순화된 형태, 강렬한 색채를 통해 대상의 충실한 묘사가 아닌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이뤄 고갱 고흐 앵소르 호들러 등과 함께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린시절

뭉크는 1863년 남 노르웨이의 로이뎅 근처 에젤호이크에서 군의(軍醫)였던 크리스찬 뭉크의 다섯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세기 노르웨이에선 상류계급에 속하는 가문이었으나, 그가 5살되던 해 어머니 라우나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며 불행을 맞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다정다감했던 아버지의 성격을 거칠고 편협하게 바꿔 놓아 어린 뭉크는 늘 불안한 생활을 해야했다. 그의 나이 14살 때 어머니 대신 헌신적으로 가정을 돌보던 장녀 소피에마저 결핵으로 죽고, 어린나이에 2번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 뭉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관조를 누구보다 일찍이 체험하게 되었다. 불행한 어린시절은 일생 지워지지 않고 남아 그의 작품세계에 생생히 녹아들었다.

그림 속에 녹아있는 고뇌와 번뇌 그리고 희망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와 사색을 즐기던 내성적인 뭉크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오슬로 국립 공예 학교에서 수학하며 그림을 통해 삶의 새 희망을 꿈꾸게 된다. 1989년 국비 장학생으로 파리에 유학하며 인상파 신인상파 나비파 상징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체험을 거쳐 상징주의, 표현주의로 대두되는 자신만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남자들이 책을 읽고, 여자들이 뜨개질하고 있는 따위의 실내화는 더 이상 그릴 필요가 없다. 내가 그리는 것은 숨을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며, 살아있는 인간이어야 한다. 보는 사람은 이 주제에서 신성함과 숭고함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교회에서 하는 것처럼 모자를 벗을 것이다.”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그의 말처럼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확고한 그의 예술세계는 평생을 정진하다 1944년 80세의 나이로 끝을 맺는다.

뭉크의 대표작이 한자리에

세계 여러 나라 미술관을 다녀도 뭉크의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않다. 피카소, 샤갈, 고흐, 마티스 등 알만한 대가의 작품이 유명 미술관 전시실을 수놓고 있을 때 유독 뭉크의 작품은 그의 조국 오슬로에 꽁꽁 숨겨져 있다. 생전 많은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뭉크지만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어둡고 기묘하기만한 그의 작품은 화상이나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해 거의 팔리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오슬로 미술관에선 그의 대표작을 포함해 거의 모든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원래 오슬로 국립 미술관의 한 켠에 전시돼 있던 그의 작품은 뭉크 미술관이 개관되며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이름뿐인 여타 개인 미술관과는 달리 작품의 내용이나 시설면에서 보는 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미술관에는 그의 대표작 <절규> 를 비롯하여 <여인> 시리즈, <자화상> 시리즈, <병든 아이> , <입맞춤> , <가족> 등 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넓은 휴게실 안에서 마시는 따끈한 커피 한잔은 차디찬 북구의 공기를 데우며 온 몸을 따스하게 한다.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고독과 절망, 죽음의 세계를 접하고 보니 사뭇 진지하게 인생을 생각해 본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감춰진 어둠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을 자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신을연(자유기고가) / 사진=조선일보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