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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 - 마드리드(스페인)

*주소:Paseo del Prado,s/n.28014 Madrid
*교통:지하철 1호선 Atocha역
*휴관:월요일,1월1일,수난절 금요일,5월1일,12월25일.
*웹갤러리:http://www.mcu.es/prado/index_eng.html

벨라스케스나 고야 같은 스페인 거장들의 작품은 스페인에 가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다른 유럽 대가들의 걸작이 유럽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스페인 화가들은 왜 이리 고립됐을까? 답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유럽이 아니다" 라는 프랑스인들의 속설속에 있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 다른 유럽국가들이 근대화와 산업화의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동안 스페인은 관공서의 하급직 자리 하나도 고위층의 빽이 있어야 하는 등 여전히 봉건적인 의식과 환경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오랜 세월 이슬람 지배 받아

이런 낙후성, 그리고 다른 서유럽 국가와는 달리 오랜 세월 이슬람 문명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스페인을 유럽 안의 외딴섬으로 만든 셈이다. 그 고립이 본격적으로 분쇄된 것은 파격과 기행으로 이름 높은 피카소, 달리 등 위대한 스페인 현대미술가들이 출현한 20세기부터다.

주변 나라들과 구별되는 이런 역사 탓인지 스페인의 그림자는 유럽 그 어느 곳의 그림자보다 진하고 어둡다. 작열하는 지중해의 태양, 투우와 정열적인 플라멩고춤 따위를 생각하면 그 어느 곳보다 밝게 느껴지는 곳이 스페인이지만 도시의 건물과 사람들 사이로 길게 스러지는 그림자들에서는 프랑스 인상파의 다채롭고 화사한 반사광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먹색으로, 끝없는 심연처럼 가라앉는 것이 스페인의 그림자이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고색창연한 거리를 걷는 나그네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삶과 죽음의 그 강렬한 흑백대비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그것이 스페인 랩소디이다.

제국의 전성기인 1581년 스페인의 수도가 된 마드리드. 그 때 이래 마드리드는 스페인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노릇을 하고 있다. 그 곳의 대표적 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왕실의 정원이었던 레티로 공원과 이웃하고 있다.

흑백대비 강렬한 도시 분위기

프라도 미술관 자체도 푸근한 잔디로 둘러싸여 있어 굳이 공원까지 안가도 좋을 만큼 주변이 한적하고 여유롭다. 하지만 미술관 안에 들어서면 워낙 많은 미술품들로 인해 관람객의 발걸음은 절로 바빠진다. 그만큼 정복하기 쉽지 않은 초대형 컬렉션이다.

프라도에는 고야의 대표작이 수십 점 전시되고 있다. '거인' (1808년)은 그 가운데서도 앞서 언급한 스페인의 그림자를 아주 감동적인 여운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검은 하늘에 머리가 닿을 듯한 거인이 어디론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땅에는 포장마차와 사람, 소들이 이리저리 유리방황한다. 무엇을 그린 것일까? 당시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초현실적인 그림이다.

한창 잘 나가던 무렵, 46살의 나이에 고야는 중병을 앓아 귀머거리가 됐다. 비록 궁정화가였지만 무능한 왕과 착취만 일삼는 세도가들에게 마음속으로 냉소를 보내고 있던 그는 이후 그들을 더욱 경원시하게 됐고 가난하고 불쌍한 민중들에 대한 끝없는 연민에 사로잡히게 됐다. 그런 정신의 흔들림을 다소 과격한 붓길로 기록한 그림이 바로 '거인' 이다. 그림은 거대한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사악한 힘에 대한 공포. 저 거인은 바로 그 악의 현현일까, 아니면 그 악과 싸우러 나가는 민중의 수호자일까. 지배집단의 폭정에 나폴레옹까지 쳐들어와 민중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던 시절, 고야가 목격한 당시의 스페인은 이렇듯 거대한 검은 그림자 속에 뒤덮여 있었다. 75세가 된 고야가 '귀머거리집' 이라고 부르던 자신의 저택 식당과 거실 벽에 '마녀의 안식일' ,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등 매우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한, 비극적인 정서의 벽화를 그린 것도 늘그막까지 그를 괴롭히는 스페인의 현실과 존재의 무거움에 대한 그의 고뇌 탓이었다. 이 그림들은 모두 '검은 그림'이라 불린다.

고야보다 1백50년 앞서 태어난 17세기 스페인의 거장 벨라스케스 역시 궁정화가였다. 비록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임금의 총애와 세속적 성공에 연연해 했던 그였지만 그 또한 고야처럼 스페인 민중들의 애환에 민감하게 반응한 화가였다. 궁정회화는 상당히 기념비적으로 그리면서도 소외된 이를 그릴 때는 그들의 비극과 고통을 예민하게 의식했다.

유럽 각국 작품 3만여점 소장

그로 인한 휴머니티의 현악적인 선율은 끝내 보는 사람의 코끝을 찡하게 한다. 노예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혜안으로 그 어떤 권력자나 지식인보다 우뚝 섰던 고대의 전설적인 이야기꾼 '이솝' 을 그린 그림은 서민에 대한 그의 믿음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잘 드러내준다. 남루한 옷과 지친 육체에 비교되는 이솝의 따뜻한 구도자적 시선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모두 3만여점의 미술품이 수장돼 있다. 고야.벨라스케스 같은 스페인 작가 외에도 루벤스.티치아노 등 다른 유럽 여러 나라 대가들의 그림이 즐비하다.

이주헌 <갤러리'아트 스페이스 서울'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