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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 테이트 갤러리

▶주소 : Mill Bank. SW1, London(지하철 Pimilco역에서 하차)
▶ 전화 : 0171-887-8000
▶ 개장 : Daily 10.00-17.50 Closed 24, 25, 26 December - open 1 January
▶ 웹갤러리: http://www.tate.org.uk

파라치가 미술가들을 쫓는다면? '보그' 나 '배너티 페어' 같은 잡지의 커버라인을 미술가들이 장식하고 그들이 참석하는 파티가 부티 나는 잡지들의 화려한 페이지들을 장식한다면? 세계적인 팝스타, 패션모델 등 대중스타들이 미술가들에게 '동료의식' 을 느끼고 그들과 매스컴에서 수다 떨기를 즐긴다면?

최근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다. 선데이 타임스지는 이같은 흐름을 기사화하면서 데미안 허스트 등 젊은 영국 미술가들에게 '엔터네이너' 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분히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호칭이지만, 어쨌든 요즘 국제 미술계에서 통칭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며 각광받는 영국 소장 미술가들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뉴욕 크리스티는 이들을 주축으로 한 올 상반기 경매에서 최고 예상매출액 1천4백10만달러를 30만달러나 웃도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근래 세계 미술계가 특별한 이슈나 조형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침체에 빠져 있는데 반해 영국만은 유독 미술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듯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수적인 도시 런던.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은 그 찬란한 영광에도 불구하고 미술 쪽에서는 늘 변두리 신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해왔다. 무엇보다 그들의 보수적인 가치관과 생활 태도에 기인한 바 크다.

최근 들어 국제적으로 주목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환경만큼 예술에 좋은 성장촉진제는 없다. 최근 영국 미술가들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1세기 문화산업시대의 격랑을 맞고 보니 전통적인 예술강국 이탈리아.프랑스.독일 등이 그 어느 때보다 의식되는 시점일 것이다.

올해 뱅크 사이드의 화력발전소를 기발하게도 테이트 모던(The Tate Gallery of Modern Art)이라는 이름의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해 대대적인 현대미술 부양에 나선 것 역시 국제예술계에서 영국의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 하겠다. 과거 런던이 매우 보수적인 도시였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미술이 그에 눌려 전혀 기를 펴지 못했다고까지 할 수는 없다. 어떠한 엄격한 규범속에서도 예술은 창조의 호흡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창조행위란 마치 연애와 같다. 제국의 위세 아래서도, 철의 장막 안에서도, 가난한 도시의 뒷골목에서도 연애와 예술은 피어나고 향을 뿜고 여운을 남긴다.

초상화.인물화는 독보적

영국 화가들이 서양미술사에서 새로운 사조나 조형이념의 창출에 앞장 선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가장 보수적인 장르인 초상화와 인물화에서만큼은 그 보수성에 걸맞게 독보적인 경지를 이뤘다. 16~17세기 홀바인이나 안톤 반 다이크 같은 대륙의 저명 화가들을 궁정으로 불러 '선진 기법' 을 전수 받은 이래 영국의 최고 전성기인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는 마침 유럽 대륙을 휩쓴 낭만주의의 파도를 타고 그럴 수 없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심지어 사춘기적인 감상마저 자아내는 인물화들을 많이 남겼다.

템스 강변의 테이트 갤러리(The Tate Gallery of British Art)에서 우리는 그 진수들을 실컷 맛볼 수 있다. 번 존스가 그린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 (1884년)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의 한 발라드에 기초한 그림이다. 아프리카에 코페투아라는 왕이 있었다. 결혼할 때가 되었음에도 그는 여자들을 멀리했다. 그가 찾는 진실하고도 순수한 여성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도 절도 없는 거지 소녀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 이 여자다!" 그는 그 소녀가 자신의 반쪽임을, 운명임을 확신했다. 궁궐은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거지 소녀를 왕비로 앉히다니. 왕은 자신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권력과 부를 위해 사랑을 버리느냐, 사랑을 위해 세상의 영광을 버리느냐. 그는 사랑을 택했다. 번 존스의 그림은 매우 화사하다. 어여쁜 몸매를 감싼 남루한 옷에서 순수한 사랑의 표정이 읽힌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아네모네꽃이 들려 있다. 버려진 존재로서 그녀의 지난 세월을 상징한다. 그런 그녀가 왕처럼 상석에 앉아 있다. 기사복을 입은 왕은 낮은 자리에 앉아 꿈꾸듯 그녀를 쳐다본다. 왕이 왕관을 벗어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은 그의 결심이 이미 확고히 서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으로 동화처럼 아름다운 그림이다. 19세기 세계를 호령하던 영국의 엄격하고도 보수적인 신사들이 이런 여린 감성의 회화에 깊이 감동했다는 것이 자못 흥미롭다.

16세기 이후 걸작들 전시

테니슨의 시를 형상화한 워터하우스의 '레이디 샬롯' (1888년)은 심연의 세계를 향해 죽음의 뱃길을 떠나는 여인을 통해 촉촉한 감성을 더욱 상승시키고 있다.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 에서도 드러나는 이같은 비극성, 혹은 종말의 미학은 절정과 종말이 결국 하나임을 증거하고 있다. 제국의 절정기에 미술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테이트 갤러리에는 16세기 이후 영국회화의 걸작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빅토리아 시대 화가들 외에 풍경화가인 콘스터블이나 터너 등의 작품도 관람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