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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프랑스로 떠나다.

*여행기간 : 2004.01.25-02.09 (14일)
*여행장소 : 대부분 파리, 3일은 근교
*환율 : 1495.91원/1유로 ('04/01/25 기준)
*여행기 마지막 업데이트 : 2004.03.16

*왜 나는 여행기를 바로 쓰지 못했나.
여행을 다녀오고 한참 지난 후에도 여행기를 쓰지 못했다. 여행 후 내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해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둥둥떠다니는 파편들로 가득했는데 이 놈들을 묶어내는 법을 몰랐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결국 '내가 아직 이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해서 볼 연륜(?)은 아닌 것 같다'라는 이유로 포기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어디 어디 유적지가 멋졌어요, 어디는 정말 훌륭하더군요'하며 이국적인 유적지나 명승지 소개하며 둘러본 소감을 말하면 됐겠지만, 이젠 나이가 들었는지(에구, 허리야.. =.=;;) 유적지나 명승지 같은 거 말고 거리에서, 일상생활에서, 상점에서, 카페에서의 그 나라 사람들의 행동, 태도가 더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 것들은 잠시 머무르는 관광객인 내가 막연하게 느끼는 '분위기'일뿐,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고 글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어쨋든 이제 그 연결되지 않는 단편들이나마 풀어 놓기로 한다.

여행을 떠나기전...
에.. 그러니까 내가 왜 여행을 떠났느냐면... 전환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나를 자극할 만한 새로운 것을 보고, 그 동안 보고 싶었던 것을 확인하며,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쉬고 싶었다고 한다면 그럴 듯한 핑계(ㅋ_ㅋ..;;;)이고, 내가 2003년 겨울, 나 스스로에게 자극을 줄만한 것이 무엇인지 궁리하던 무렵 readymade님이 빠리여행 다녀왔다고 슬슬 약을 올리시더니, 유럽배낭여행 하고 오신 nicehong님께서 '산토리니섬' 사진으로 확실하게 충동질을 해주셔서 나도 모르게 '가버리자, 겨울의 빠리로!!! s(  ̄ ▽ ̄)/'라며 발동이 걸려버렸다. 사실 계획대로라면 2003년에 해외여행을 했어야 했는데 무의식 중에 '이 것을 늦게라도 가야한다'라는 생각이 있었나 부다. 어쨋든 같이 가기로 한 올리비에가 3주 연기 끝에 결국 못가겠다고 최후 통첩해와 어쩔 수없이 혼자라도 떠나게 되었고, 몸이 약해져서 예전처럼 배낭매고 돌아다니는 여행은 무리다 싶어 선택한 것이 파리에서만 2주. 넉넉한 기간이다 싶어 계획도 예전처럼 시간대별로 철저하게 말고 하루 이틀 단위로 느슨느슨하게 세웠다. 혼자 여행은 처음이라 겁 잔뜩 먹은 것 맞고, 그 동안 현지인 숙소만 들르며 무시하던 한국인 민박집을 이제서야 가보게 되어 여기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그 동안 동경해온 파리에 대해 빠트리지 말고 다 보자고 맘 먹은 것도 있었다.

※여행 중에...
여행 중에 어디어디 다녔나는 '파리여행 사진'을 참조하시라. 사진마다 대강의 주석은 달아 놓았다. 사진의 내용과 겹치는 것은 이 곳에 쓰지 않았다. 1차적이고 시각적인 것은 사진으로 찍고,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은 글로 쓰고, 글로도 쓸 수 없는 것은... 내 마음에 담아 둔다. 아래 느낌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다른 날, 다른 기분으로 방문하면 또 달라질 것이다. 촌놈의 파리에서의 느낌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시길. (혹시 절대적으로 틀린 사실이 있다면 알려주시라. 고치겠음.)

처음에는 단조롭게 보였지만 편안하고 익숙해지는 잘 계획된 파리시
- 공항에서 파리시내로 들어갈 때 나는 잘 사는 나라이니 왠지 공항 근처에 비까번쩍한 소위 비지니스 빌딩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빠리 시내들어갈 때까지 계속 들판만 나오고 마땅히 높은 건물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시내에 들어서도 고층빌딩이 없고 다 고만고만한 크기와 색채들의 석조건물들이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만큼 높은 건물이 없잖아~'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에펠탑이나 몽빠르나스 타워에 올라가 조망을 보면서 그 단정하고 깨끗하고 예쁜 파리시 모습에 어찌나 감탄이 나오던지... 여기저기 고층건물을 지으라고 허가를 내줬으면 에펠탑 바로 옆에 뜬금없이 높은 건물이 생겨 에펠탑을 가렸을지도 모르고, 퐁피두 센터 옆에 높은 건물이 있었으면 이 곳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은 못 봤겠지. 빠리는 전체적으로 잘 계획 된 도시였다. 어디하나 무신경하게 지어진 건축이 없고, 시 관계자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어떤 건물을 신축 할때는 옆건물과 조화를 이루는지를 따지는 것 같았다. 높은 건물이 많다고 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니거늘 이 것으로 잘 사는지 못 사는지를 가늠하려고 했던 내 잣대가 틀렸다. 아.. 촌티나는 나.

- 샹제리제를 왔다갔다 하다 우연하게 검은바탕에 흰글씨로 'LIDO'라고 적힌 건물을 보았다. '저게 그 리도쇼 하는 곳 맞아?' 호화로운 쇼를 한다면 알록달록 원색의 커다란 네온 간판에 하루종일 불이 번쩍번쩍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아한 보석가게나 되는양 심플한 간판을 보니 헷갈렸던것. 그제서야 돌아보니 샹제리제에는 네온간판도 없고 돌출 간판도 없고 길거리에 내 놓은 간판도 없다. 건물에 붙이는 간판들의 크기도 제한이 있는 듯 했다. 그 만큼 거리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그 동안 눈 여겨 본 결과 카페나 약국들의 간판은 다 크기와 모양이 똑같았고, 어느 상점이든 눈에 튀어 나오게 커다랗게 쓴 이름도 없었다. 기업에서 기업이미지관리(CIP)를 하듯, 프랑스는 나라 전체가 국가이미지관리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시행하고 있는 듯 했다. 맥도날도의 노란 M자 마저도 흰색으로 바꿨던데 간판에 붉고 노란색은 거의 쓰이지 않는 듯 했다.

-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여기저기 얽기설기 엉킨 시커먼 전선줄들... 왜그렇게 눈에 거슬릴까나 생각해봤더니 그제서야 파리시내에 전기줄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땅속에 묻었나보다. 전기줄이 없는 것 하나 만으로도 그렇게 거리가 깨끗하고 하늘이 시원해보였는데 이 것과 비교해서 우리나라가 참 아쉽다. 하지만 이제와서 저것들 땅 속에 묻는다고 하면 비용은 둘째치고 관리하는 곳이 다 제각각이다 보니 전기줄 묻는다고 땅 파헤치고, 가스관 묻는다고 또 파헤치고, 전화선, 수도관 묻는다고 또 파헤치겠지...

루브르, 오르세이 콜렉션보다 더 훌륭했던 것은 그 것을 즐기는 태도.
- 박물관에 들어가서도 예전의 여행기같으면 '프라도 미술관이 참 좋았어요, 고야 그림을 보게 되서 좋았어요' 했을테지만 이 것은 스케일 면에서 압도 당하고 보니 다소 아담했던 프라도처럼 느긋하게 그림 한점한점 감상하기가 힘들어졌다. 젠장! 프라도미술관은 루브르 미술관 3개관중 1개관의 크기보다도 작고, 그리스에 있는고대 미술관의 컬렉션은 루브르 고대 그리스 콜렉션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고대 그리스 조각중 훌륭하고 귀한 것들은 다 루브르에 있고 그리스 고대 미술관에는 그 나머지 자투리들만 있는 것 같았다. 루브르를 돌아 본 하루만에 박물관에 3일을 할애해 놓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은 생활 속에서 숨쉬어야 하는 것이지 3일동안에 다 소화시키고 해소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화불량에 걸리다 못해 현기증이 일고 지레 지친다. 이런 박물관이 주변에 있어 일생에 한번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언제든지 가서 보고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겨울의 루브르는 다행히 여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넘쳐났다. 겨울에도 이 정도니 여름에 왔으면 정말 끔찍했겠다. 박물관 방문객들은 아시아인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유럽사람들이나 미국사람들은 한번씩 다 보고 빠지고 이젠 아시아인들이 유럽을 배우기 위해 몰려드는 느낌이었다. 중국인들, 한국인들, 일본인들 많았고, 특히 중국인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까지 단체로 몰려다니며 견학하고 있었다. 아아.. 중국 무섭다. 어찌 파리의 박물관까지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하러 온단말이냐. 물론 부자집 아이들이고 선택받은 일부이겠지만 어려서부터 받는 교육의 질이 사뭇 다르기에 저 아이들이 커서 중국을 이끌 때면 우리와의 경쟁력이 어떻게 될까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 우리나라에서 미술관 책을 읽다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 앞에 앉아서 편안하게 스케치 하는 할머니나 학생들의 사진이 있었는데 실제로 가서보니 여기저기 혼자 또는 둘이 나란히 앉아 스케치하는 모습이 많아서 부러웠다. 또한 열명남짓의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와서 작품 앞에 앉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보면 이렇게 풍요로운 예술작품들 속에서 크다보면 우리가 선망(?)해 하는 예술작품이 별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더 나아가 더 큰 창의력이 개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또한 루브르, 그 한정된 공간 속에 외국인들을 몰아넣고 돈을 버는 진정 프랑스의 '연기없는 공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볼 것이 없어서 나라 하나를 하루만 휙 돌아보고 떠나는 것이 아닌, 어떻게든 한나절은 보고 가야하는 이 박물관에서 외국인들은 다른 곳은 못 둘러보고 내내 잡혀있다. 문화사업은 이래서 무섭다. 관리와 유지만 잘 해도 돈이 된다. (하긴 문화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관리와 유지도 하지)

음식이야기
- 프랑스 음식이 맛있다고는 하나 나는 푸와그라나 달팽이 요리같이 거창한 요리만 맛있고 나머지 음식들은 다른 곳에서 맛 본 것처럼 그저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기본적인 빵부터 해서 모든 음식들이 다 맛이 있었다. 정말 혀가 즐거웠다. 오렌지나 사과 같은 과일들도 껍질이 얇고 아주 달았다. 과일 맛이 좋은 것은 기후가 좋아서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거리가 풍요로운 곳의 사람들은 정서도 그만큼 풍요롭다'라는 못 말리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나는 프랑스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덩달아 프랑스 사람들도 아주 너그럽고 여유 있을거라고 제멋대로 점수를 올려 버렸다. 갓 나온 바게뜨빵은 그냥 먹어도 맛있고, 쨈이나 버터를 발라도 맛있고, 핫도그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도 맛있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한국에서 바게뜨빵을 사 먹었는데 너무 짜게 조미되어 있고, 수입밀가루라 그런지 밀가루 질이 좋지 못해 입맛만 버렸다. 그나마 빠리바게트의 바게트빵이 좀 낫다.) 예전에 그리스의 딱딱한 빵과 수수한 야채 샐러드를 먹다가 터키에 가서 부드러운 빵과 풍요로운 과일들을 보고 '두 나라가 다르구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프랑스에서 음식을 먹고는 '전 세계의 음식이 다 다르고 맛있는 것은 따로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서양에서 빵이라도 다 같은 빵이 아니더구만.

- 빵은 그렇다 치고 치즈는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한번은 지하철 통로에서 치즈 파는 사람이 커다란 치즈를 살짝 잘라 시식을 시키고 있었는데 같이 다니던 나와 일행들은 낼름 받아먹고 일제히 외쳤다. '된장맛 같아!!!'. 포도주와 치즈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들었으나 너무나 많아서 쫙 늘어서 있는 진열대에서 무엇을 고를지 난감할 수 밖에 없다. 민박집에서 머문 학생 중 하나는 서울로 떠나기전 산 치즈를 여기 교민이 보고 '아마 그 치즈는 향이 강해서 못 먹을거다'라는 말을 듣고 실망한 것을 본 나는 감히 치즈 고를 생각을 못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서울에 오기 하루 전날 김선생님 사모님께서 1시간 정도 드라이브해서 나간 쇼핑지역에서 직접 골라주셨당. 와인과 같이 먹을 치즈를 골라달라는 말에 '먹을 줄 안다!'라며 좋아하시면 성의껏 골라주셨는데 웬걸 집에 와서 포도주만 대강 마셔버리고 치즈는 차마 못 먹고 있다. 그 냄새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치즈를 앞에 놓고 눈싸움만 벌이고 있는데, 아아.. 언젠가는 맛보아야할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불어'만 할 수 있으면 친구이자 프랑스인.
내가 생각하기에 프랑스인이냐, 외국인이냐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불어'같았다. 여기는 동양인도 많고 흑인도 많아서 진짜로 누가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현지인이 나에게 불어로 말을 걸다가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며 'Sorry, I can't speak French'하면 그때서야 외국인인지 알아보고 영어로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우리말을 잘 하더라도 우리네와 생김새가 다르면 그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고 '외국인'이다. 우리는 외국인에게 쉽게 다가가거나 다가오게 하지 않는다. 스스로 벽을 치고 차별하는 셈이다. 말만 통한다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이방인에게 보다 개방적이고 친밀하게 구는 곳. 프랑스다. 나도 불어만 할 줄 알면 그 들과 언제든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삼 영어가 다가 아니며 미국이 최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세상 어디서든 미국 영어면 다 통하는 줄 알고, 미국 캐주얼이나 미국 디자이너 패션이 제일 세련된 줄 알고, 미국 햄버거와 패밀리 레스토랑에 익숙해지려 하며 뉴욕의 고층 빌딩들만이 부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받아온 우리나라 교육과 분위기 때문이겠지.) 유럽은 전통과 문화가 있다. 유럽에 비하면 미국은 다소... 음... 좋은 말로 해서 다소 빈약하다.

하고 비슷해. 프랑스 사람 성격.
횡단보도에서 착하게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다 여행객이나 외국인들이다. 프랑스사람들은 교통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잽싸게 길을 건넌다. 신호가 바뀌어도 차가 무서워 한참동안 두리번 거리고 있는 우리네하고는 좀 다르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 들이 더할 나위없이 바쁘고 성격 급한 사람들처럼 느껴졌지만 곧 나도 그들처럼 신호 무시하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람들 운전자나 보행자나 다들 성격이 급하다. 어쨋든 그들의 인상은 활기차고, 날쌔고, 호기심이 강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며,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점들은 나와 비슷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어서 맘에 들었다. 변화가 없는 것을 따분하게 여기고, 자기에게 좋은 것만 취하는 점 때문에 다소 변덕스럽기도 하다더라. 다소 작은 키의 프랑스 남녀들은 모두 날씬하고 옷을 잘 입었다. (옷을 잘 입었다는 것은 최신유행의 옷을 입었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자신에게 어울리게 옷을 입는다는 뜻이다.) 뚱뚱한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다이어트에 신경 쓰며 말쑥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산책을 할 때도 정장을 갖춰입고 나간다. 누구든 우리처럼 후줄그레한 추리닝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누가 보든 안보든 스스로의 격식을 갖고 생활한다. 여기 옷상점들을 구경하면서 옷색상들이 맘에 들었는데 우리나라 옷과 같은 색이라도 그 색의 표현이 넓고 깊이가 있었다. 색이 어떻게 다르더냐고? 음... 그 '미묘'하게 살짝 다른 느낌 있잖은가.

똘레랑스(Tolerance)의 나라, 하지만 매너는 상호가 지키는 것.
Melting Pot이라는 말이 생겨난 미국보다 오히려 나는 빠리가 더 Melting Pot답다고 생각했다. 다인종이 모인 미국은 서로의 문화나 이해에 대해 간섭은 안하되 그냥 무관심하게 넘겨버리지만, 빠리는 똘레랑스로 서로를 이해하고 융화하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말에 대해 '단순함'님께서 다른의견을 말씀해주셨다. 감사. ^^) 하지만 똘레랑스의 나라라고 해서 내가 무례하게 군다고 해서 다 넘겨주고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개방적이고 친절한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프라이버시는 악착같이 지킨다. 여기서 제일 많이 쓰는 말 '빠동, Pardon, 실례합니다', '메르시, Merci, 감사합니다' 두 마디이다. 나는 이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가 바른 만큼 상대방도 나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길 바라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양인들은 보편적으로 그런 편이지만 유독 자신의 공간을 침해당하는 거 경계하고 싫어한다. 혼자 카페에서 커피 한잔 앞에 놓고 있을 권리나 공원이든 성당 계단이든 혼자 휴식을 누릴 권리를 지키는 것이고 그 것이 침해당하면 불쾌한 것이고 화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나는 빠리에 가면서 유적지 사진도 좋지만 생활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다. 하지만 속으로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고, 여행객들도 많고 해서 사진찍히는거 민감해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용케 느끼고 금방 돌아본다. 그러면 차마 그대로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카메라를 내려놓는 수도 종종 있었다. 그 사람들이야 '여행객이니까 봐주자' 이런 생각 안할테니 말이다. 어쨋든 이 고상하면서도 도도한 도시에서 나름대로 매너 지키느라고 고생을 좀 했다.

프랑스의 색은 블루? 의외로 차분했던 빠리.
프랑스의 삼색기, 블루, 화이트, 레드를 떠올린 나는 패션의 도시 빠리에 도착하면 이 세가지 색이 다 보이고 알록달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검정, 회색 등의 무채색이 많고, 관공서의 유니폼들은 죄다 Blue 아니면 Navy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파란색을 참 좋아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98년 월드컵때 수탉이 입었던 옷 또한 블루였다. 또한 프랑스만큼 블루를 잘 염색하는 나라가 없다고 하던데. 블루의 종류만 해도 그 가지수가 엄청나다고 들었다. 파리 교외의 겨울의 볼로뉴 숲은 우충한 날씨와 벌거벗은 나무들 때문에 온통 잿빛이다. 현지 교민은 '이게 빠리의 색이야. 회색빛'. 나도 동감했다. 나는 겨울의 파리를 보게되서 기뻤다. 여름에 왔으면 보다 화창한 날씨와 푸르른 나무들이 좋았을 지는 몰라도, 법정휴가가 5주(6주라는 말도 있지만 현재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5주.)나 되는 이 나라에서 여름에 Grand Vacance를 떠나버린 빠리지앵들은 보지 못하고 대신 밀려오는 외국인들로 북적댔을테니까. 하긴 파리는 겨울 뿐 아니라 사계가 다 멋질 것 같긴 하다.

(그외)

중국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

첫날 도착후 중국을 환영하는 프랑스 분위기에 대해서는 내 사진(1. 파리의 첫 인상)과 윤창현교수의 [시평]빨갛게 물든 에펠탑, 길정우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글로벌 아이] 우리는 아직 '변방'이다'을 참고하시라. 현지인이든 여행객이든 중국인들이 바글거리는 빠리를 보고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 일본은 잘 살사니까 그려러니 하지만 우리보다 못한(?) 중국의 유세가 갈 수록 높아지는 것에 시기와 질투가 일어 이를 인정하기 싫었나보다. 일본과 중국은 지명도가 있는데 그 사이에 낀 한국은 어디에 있나. 한국은 여전히 변방이고 일제와 미국식민지에 정체성이 모호한 나라일 뿐인가. 외국에 나가면 절로 애국심이 인다지만 그거야 우리나라 내부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때이고, 어디가서 내세울 거 하나 없으면 저절로 위축되고 사회지도층들이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월드컵때도 그랬었지만) 점점 정치와 국민이 유리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 혼자 여행을 다니면 외롭다. '당연히' 외롭다. 나 뿐만 아니라 혼자 떠난 여행자는 모두 외롭다. 그 외로움에 대해서는 별도로 쓰지 않는다. 그 것은 철저히 나만의 것이고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 인적드문 지하철 역에서 '봉주르~'하면서 내 엉덩이 만지고 도망간 흑인 꼬마애. 순간 치한인가 싶어 놀랐는데 실상은 너 소매치기지? 그런데 잘 못 봤어. 나는 가난하거등.. 함 봐줬다.
- 김선생님 따라 구경간 몽트뢰이 벼룩시장. 잘 정돈된 클리냥꾸르 벼룩시장과는 다르게 시커먼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혼자였으면 먼발치에서 그냥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거기에는 훔친 휴대폰을 다시 되파는 청년들이 많았고, 어떤 남자는 김선생님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빼가려다가 걸렸다. 또 다른 사람은 계속 우리를 타겟으로 해서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혼란한 틈을 타서 내 머리카락을 쓰윽 만진 어떤 손!!! 순간 소름 쫙 끼쳤다. 꽥!
- 지하철에서 나오는데 나 나올때까지 문 잡아 준 아저씨, 더 나아가 친절을 배풀길, 나보고 덜렁덜렁 손에 든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으라고 말해줬다. 솔본느에 같이 입장하게 해준 강사 아저씨, 역시 손에 든 카메라 숨기라고 수퍼마켓에서 비닐봉지까지 얻어다 넣어주었다. 오토바이 탄 도둑들이 휙 채간다나. 친절했던 사람들.
- 여럿이 함께 쓰던 민박집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나 빼고는 모두 22살에서 26살정도 되는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유럽을 돌고 어떤 여행을 했는지 이야기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어떻게 생각이 변했고 어떻게 앞으로 살 것인지 이야기 듣는 것도 즐거웠다. 나는 처음에는 인터넷파리라는 민박집에 머물렀었는데 여기가 이사를 한다고 해서 다른 민박집을 알려준 곳이 그림이있는집이었다. 이 곳에 머무면서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나 할까.
- 프랑스만 있겠다고 파리에만 있겠다고 유레일 패스를 끊어가지 않은 것이 무척 큰 낭패였다. 나중에는 어디를 다녀볼려고 해도 유레일 패스가 없어 할인이 하나도 않되고 그 비싼 제 가격을 다 주고 다녀야 해서 주저 앉는 꼴이 되었다. 앞으로는 한 나라만 다니더라도 경로를 잘 살펴보고 다만 며칠짜리 플렉시라도 끊어가는 것이 좋겠다.
- 아아, 젊은 학생들이여 혜택이 있을 때 유럽여행을 즐겨라. 정말 유럽은 대학생 배낭여행자에겐 최적의 장소다.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할인혜택 되는 것이 많고, 디자인 전공 학생이라는 증명이 있으면 유명한 박물관은 공짜, 디자인 전공이 아니더라도 대학생정도 나이면 성인들보다 입장료가 저렴하다. 얼마나 좋노!!!

*파리를 다녀와서...
그렇다. 위에 글을 읽으면서 느꼈겠지만, 어쨋든 나는 간사하게도 2주 여행만으로 '친불주의자'가 되려하고 있다. 이를 밝히기가 주저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엄따! 나는 프랑스가 못 견디게 좋다. 혼자만 짝사랑 하나 보다. 프랑스와 사랑에 빠지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개똥이나 약간 수상한 냄새가 나는 지하철 복도,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듯한 표정 같은 것은 흠잡을 것이 못된다. 오히려 약간의 매력으로 보이게 된다.

마음속에 묻어둔 스페인의 알함브라궁전, 한번만 더 가보고 싶은 그리스의 산토리니에 이어 파리는 기회가 되면 살고 싶은 곳으로 남게 되었다.무엇보다도 파리는 내 스타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