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원래 허무한 거 아닌가?”

현재 참여하고 있는 서울시 힐링프로젝트 –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 의 4회차 세미나 주제로 쓴 글입니다.

==========================================

“인생은 원래 허무한 거 아닌가?”

‘내 인생의 가장 잊을 수 없는 한마디’ 주제를 듣고 제가 최근에 계속 그 의미를 추적해 가고 있는 말을 소개할까 합니다.

올 3월, 또 한 차례 멘붕을 겪고 나서 패닉을 겪을 때면 나오는 제 버릇대로 대짜고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어른에게 연락 드려서 “안부를 여쭙는다” 핑계로 시간을 내 주십사 했습니다.

이 분은 제가 예전 직장에서 3년 반개월 동안 모시기도 했던 직장 상사시며, 또 제 맘대로 ‘멘토’라는 호칭을 붙여 모시기도 하는 분이었습니다.

사회적인 위치도 높으시고 연세도 조금 있으신데도, 그 나이대의 사람들과 다르게 권위적이지 않고, 늘 겸손하시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시는 분이라서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존경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점심 경 시간을 내어 뵌 분께 여쭸습니다. 편의상 사회적 지위가 드러나는 원래의 호칭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라 칭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삶의 허무를 어떻게 견디십니까?”

아직 중2병을 벗어나지 못한 저는 의기양양하게 잘난 척 물었고, 자못 “힘들더라도 잘 살아야지” 라는 자기극복 식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답변은 뜻 밖에 이러셨습니다.

“삶이 원래 허무한 거 아닌가?”

저는 그 뜻을 헤아리느라 잠시 멍해졌습니다.

그 사이에 선생님은 덧붙이더군요.

“난 어려서부터 일찍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네에?” 저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선생님 정도 되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분들은 평생 삶을 순탄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우울하거나 허무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 순탄한 인생이면 항상 자기 원하는 대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인생이 즐겁고 낙천적이기만 할거다’라는 제 생각과는 전혀 반대되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평온하시고 잔잔한 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어려서부터 일찍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지금도 조금 다운되어 있어.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

저는 이 말을 듣고 몇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번째는, 또 한번 상대방을 제 틀에 맞춰 이상화 시켜 놓고 기대에 맞지 않으면 그 사람 탓하며 비난하려 한 것입니다.

이런 사고 때문에 제가 한번 크게 뉘우친 적이 있었는데도, 가까운 사람에게는 여전히 그 잣대를 내려놓지 않고 있었던 거에요.

두번째는, 저는 삶의 모호함이나 빈 공간을 참지 못해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 그 공간을 채우려고 하거나, 있는 그대로를 견디지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모호함이나 무의미함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할만한 일을 찾아 헤매거나, 뇌를 자극시키는 일을 억지로 짜내서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등 ‘내가 살아 있다’라는 걸 외부에서 충족시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삶은 원래 공허하고, 의미가 없기도 하며, 모호하기도 하다… 이 말을 받아들이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견디고 이해하는 것도 ‘내공’이라고 생각하고요.

이제 명상이나 경청, 받아들임 등을 훈련해서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를 보고 또 그 모호함도 견뎌보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그때까지 깨달은 바를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살고자 하나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일은 하고 싶다 하면서 어려운 것은 하기 싫다 하고, 수영을 배우고 싶다 하면서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하고, 연애는 하고 싶으면서 손해 보는 것은 싫다 합니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들어가 자연스러워 질 때까지는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필요한데, 저는 그게 힘들다고 처음부터 안합니다. ”

지금은 그렇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은 “삶”이라는 수영을 배우는 중이라 당연한 것이라고.

나는 “삶을 사는 중”이라고 위안합니다. 그럼 조금 정신승리가 됩니다. ^ ^(음?)

——————
선생님께서는 이 외에도 저에게 여러가지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은 “미정씨는 항상 스스로 배우는 사람이 아닌가?” 이 말은 제가 “선생님께 많이 배웠다”는 말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내가 딱히 가르쳐 준 것이 없다”는 솔직하면서도 얄미운 답변임과 동시에 타인에 대해 평가하는 법이 없으신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어서 좋았습니다.

또 다른 말은 “미정씨 보면 복수초 같다”입니다. 별첨은 “삶은 원래 허무하다”는 말씀을 들은 날 그 자리에서 보내주신 사진인데, 직접 찍으신 복수초 사진이었습니다. 

IMG_2312

저는 살아 오면서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얻고, 좋은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이번 10월에 선생님을 한번 뵙기로 했는데, 맘 프로젝트 여러분을 비롯해서 그 동안 배우고 느낀 바를 전해드리는 즐거운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항상 배우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